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
페이지 정보
작성일 22-12-31 11:49
본문
Download : 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hwp
서울 건천동(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이때 호인(호인)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32세가 되어서야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권지훈련원봉사(권지훈련원봉사)로 첫 관직에 올랐다. 또 안골포에서 가토 요시아키[가공가명]의 수군을 격파하고[안골포해전], 9월 Japan 수군의 근거지인 부산으로 진격하여 적선 100여 척을 무찔렀다[부산포해전].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웅천)에 있던 Japan군을 격파함으로써 남해안 일대의 Japan 수군을 완전히 일소한 뒤 한산도로 진영을 옮겨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1586년(선조 19) 사복시 주부를 거쳐 조산보만호(조산보만호)가 되었다. 그 뒤 전라도 observe사 이광에게 발탁되어 전라도의 조방장(조방장)이 되었다. 이후 1589년(선조 22) 선전관과 정읍(정읍) 현감 등을 거쳐 1591년(선조 24) 유성룡의 천거로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냈다.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동구비보권관)과 발포수군만호(발포수군만호)를 거쳐 1583년(선조 16) 건원보권관(건원보권관)·훈련원참군(훈련원참군)을 지냈다. 같은해 7월 한산도대첩에서는 적선 70척을 대파하는 공을 세워 정헌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명나라 수군이 합세하자 진영을 죽도(죽도)로 옮긴 뒤, 장문포해전에서 육군과 합동작전으로 Japan군을 격파…(drop)
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
레포트/경영경제
불멸의이순신
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
다. 1572년(선조 5)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 별과에 응시하였으나 달리던 말이 넘어져서 왼쪽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실격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Japan 수군과 첫 해전을 벌여 30여 척을 격파하였다[옥포대첩]. 이어 사천에서는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분쇄하였다[사천포해전]. 또 당포해전과 1차 당항포해전에서 각각 적선 20척과 26척을 격파하는 등 전공을 세워 자헌대부로 품계가 올라갔다.




Download : 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hwp( 33 )
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불멸의이순신 , 이순신에 대한 종합적 고찰경영경제레포트 ,
순서
설명
,경영경제,레포트
본관은 덕수(덕수)이고, 자는 여해(여해), 시호는 충무(충무)이다. 같은 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전라좌도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한 뒤,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